나는 지방의 중소 SI업체에서 일 하고 있는 올해(2022년) 8년차의 SI 개발자다.
내가 ‘개발’하고 있는이 아닌 ‘일’하고 있는 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하고 있는일은 ‘개발’이 아닌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을 간 것일까. 병역특례를 위해 집과 가까운곳의 SI업체에 취업한 순간부터 잘못된 선택인걸까?
그 당시엔 IT업계가 세분화되어 있고, 그 중에 SI는 개발자로써 좋지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 재미있었으니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 업무에 사용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처음 1년간은..
새로운 것도 배우고, 잘 이해가지 않았던 지식이 실전에 써먹어보니 왜 이렇게 만들어진건지 이해가 갈때는 희열을 느낄 정도였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발전’하는 것이 좋았다. 사내에서 프로젝트가 끝날때마다 DB설계 정보를 직접 문서화 하는 것을 보고, 쿼리를 이용하여 자동화 하기도 했다. 이때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늦게까지 야근도 했다. 재밌었으니까.
물론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은 내 정신을 좀먹기도 했지만. 개발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1년이 지나고.. 몇년이 지날때까지 이 회사는 발전된것이 없었다.
기존 윈도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던 회사가 트렌드라고 웹을 개발했지만, 나이드신 임원들이 새 기술을 배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회사 자체의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버렸다.
프론트엔드-백엔드의 경계가 없고 디버그 모드에서 쿼리가 그대로 노출되는 어마어마한 프레임워크를..
그리고 사람들에게 여러개의 프로젝트들 동시에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동일일정을 동일한 사람에게 동시에 진행하라고..
이제는 몸도 힘들어졌다. 그럴수록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니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해 볼 수 없었다.
CI/CD를 적용해서 좀 더 업무를 효율적으로 바꾼다거나.
데브옵스나 Git을 이용해서 유지보수를 좀 더 쉽게 만들어 보고싶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항상 시간이 더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건 아마도 ‘개발자로써의 발전이 없는 것’ 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모르고 부당한 대우라는 생각에만 파묻혀있었던 것 같다. 진작 깨닳았다면 지금이 아닌 훨씬 전에 퇴사했을텐데..
인터넷에는 새로운 기술이 생기고, ‘오.. 이건 써볼만 한데?’라는 아이디어도 들지만.. 정작 업무에 적용할 시간도 멘탈도 이미 없었다.
그러다 지금 여자친구는 스스로 잘 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카카오 코딩테스트 문제가 있길래 참여해 봤다. 벌써 8년전에 배운 내용들인지 ‘이렇게 하면 될꺼 같은데..’ 하면서도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5문제중에 겨우 2문제 풀었다.
그렇게 1년을 더 허비했다.
그러다 또 회사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여자친구와 살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되지?'
생각이 들고 여름휴가 기간동안 많은 고민을 했고, ‘이미 늦었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변하는것도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사표를 썼다.
지금 회사의 업무량과 스트레스로는 코딩테스트건 사이드 프로젝트건 할 여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또한 변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오래 근무한 탓이 6~7개월 정도는 준비기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9월말에 그만두게 되는데.. 제발 미래의 내가 시간낭비를 하지 않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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